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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객사 뉴스기사) 무궁화전자 - 4년 흑자행진... 직원 70%는 장애우
   관리자    2007-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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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흑자행진... 직원 70%는 장애우

매출 100억원대 기업이 이런 체계를 갖춰 놓은 걸 본 적이 없어요."

이승규 한국과학기술원(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가 혀를 내두른다. 그가 들여다보고 있는 SMT(표면실장기술) 라인 게시판엔 공정 불량 현황, 장비 에러율, 불량 내역 따위 월별 품질관리 지표들이 한 눈에 보이도록 줄지어 붙어 있다. 6일 사회적 기업 연구를 위해 무궁화전자를 방문한 이 교수는 어지간한 대기업에 버금가는 품질 관리 시스템이라고 평가했다.

2003년 만성 적자를 벗어난 이후 내리 4년째 흑자 행진. 이런 기업에 직원 70% 이상이 장애우라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수원시 영통구에 자리 잡은 무궁화전자는 직원 167명 중 121명이 장애우이다. 그중 89명은 1, 2급의 중증 장애우다.

이들이 지난해 매출 131억원, 순익 2억5000만원을 냈다. 2005년엔 매출 116억여원에 5억3200만원의 순익을 올렸다. 이 기적 같은 이야기의 중심에 김동경(53) 무궁화전자 대표 겸 공장장이 서 있다.

◆삼성전자 사회공헌대상에서 당당한 제품 공급자로

"2002년에 이상배 당시 삼성전자 부사장께 제안을 받고 무궁화전자에 와봤어요. 무궁화전자는 당시만 해도 삼성전자에서 연간 10억원씩 지원 받아 운영되고 있었는데, 공장 가동률이 60%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동안 조사 끝에 정상화되려면 설비 투자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냈지요."

그 때부터 한달 동안 김 대표는 이 부사장을 설득했다. SMT장비를 갖춰 주면 지원 없이 굴러갈 수 있도록 경영 정상화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투자 금액은 18억원. 처음엔 "장애우가 어떻게 특수장비를 운영하겠냐"며 반신반의하던 이 부사장이 결국 결단을 내렸다. 고가 장비와 함께 삼성전자의 엔지니어 인력까지 6개월 동안 지원해주기로 한 것이다.

"장비 들여오기 전 50일 동안 삼성전자로 직원을 보내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장비 세팅한 뒤엔 하루에도 열 차례 이상 공장으로 나가 상황을 점검했어요. 제가 6월 10일에 부임했는데, 딱 6개월 뒤에 가동식을 했습니다. 12월 10일이었지요."

그가 부임 후 처음한 일은 생산성 낮은 사업 부문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는 수익이 나지 않는 정수기 라인을 통째로 들어냈다. 삼성전자의 지원을 받아 SMT라인 2개를 설치하면서 PDP TV ‘파브’의 콘트롤러 등 삼성전자의 신규 아이템 생산에 들어갔다.

다음 단체로 그는 생산 물량 확보에 나섰다. 가동률 100%를 목표로 그는 거래처를 돌았다. 장애인이 만드는 제품을 팔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틈나는 대로 거래처 문을 두드려 신규라인의 장점과 장애사원들의 능력을 자랑했다. 그의 지성에 감복해 삼성전자의 VD사업부에 이어 동양계전, 아성전자가 물량을 발주했다.

"이때부터는 예전에 제가 일하던 삼성전자 제조 부문 관리자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장애사우들도 눈에 띄게 자신감이 늘었고, 공장도 생동감 있게 돌아가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재정 자립이 불충분했다. 현재 무궁화전자의 생산직 사원은 연 1350만원을 받는다. 동종업체 임금의 120% 수준이다. 장애우 사원의 생산성은 비장애우 사원의 70% 수준이다. 이 격차를 무엇으로 메울 수 있을까? 김 대표는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전의 자금 관련 자료들을 꼼꼼히 다시 검토했다. 이상했다. 장애우 사업장인데도 시설운영 지원금이 한 푼도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삼성전자의 사회공헌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애초부터 시설 운영을 전혀 지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수원시청과 경기도청, 보건복지부의 담당 부서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시간은 흘러갔지만, 담당 공무원의 답은 매번 같았다. "원래 삼성전자가 하기로 했던 것이잖습니까?"

그러나 1994년 삼성전자가 234억원을 투자해 만들었던 시설은 이미 낡은 상태였다. 휠체어가 다니는 바닥은 울퉁불퉁해졌고 공장 내 시설은 삐걱거렸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2개월여 동안 공무원들을 설득했다.

그의 끈기에 결국 담당 공무원은 손을 들었다. "대단하십니다. 김 공장장님." 이후 무궁화전자는 매년 3억원의 시설 환경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무궁화전자는 장애우들에게 '꿈의 작업장'이라고 불린다. 100여명의 장애우를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엔 물리치료실부터 독서실, PC방, 화실에 노래방까지 있다. 기숙사로부터 공장까지 연결통로엔 유리 천장과 투명 플라스틱 가리개가 달려 있다. 비나 눈이 올 때 휠체어나 목발이 미끄러지지 않고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모든 통로엔 당연히 계단이나 턱이 없다.

더 많은 장애우를 고용하면 더 많은 장애우가 행복할 수 있으련만, 김 대표는 직원을 200명 이상 늘리지는 않겠다고 말한다. 장애우 사원의 생산성에 한계가 있어 직원을 늘리면 기업으로서 지속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고용을 늘리는 것보다는 제2, 제3의 무궁화전자가 탄생하는 것이 낫습니다. 장애우 기업도 100명, 200명 정도 규모라면 충분히 유지될 수 있어요. 울산, 구미 같은 곳에 큰 공장을 가진 대기업들이라면 무궁화전자 같은 사회적 기업을 운영할 수 있을 겁니다."

◆"장애우가 벌어 장애우 돕는 기업 만들 것"

그의 꿈은 앞으로 무궁화전자를 장애우가 벌어 다른 장애우를 돕는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무궁화전자의 정년은 55세. 장애우는 나이가 들수록 비장애우보다 노동력이 급속도로 떨어진다. 10년 뒤, 20년 뒤 일손을 놓게 될지 모를 장애우 사원들을 위해 그는 종합복지타운 건립을 구상한다. 장애우 전용 휴양소를 세우는 일도 꿈꾼다.

"언젠가, 한 장애사우가 말합디다. 공장장님, 바다가 보고 싶어요. 그때부터 매년 1박2일로 동해안 망상해수욕장으로 전 직원이 놀러갑니다. 거기엔 오토캠핑장이 있어서 장애 사우들이 계단으로 올라다니지 않을 수 있거든요. 콘도는 보통 2층 이상이라 장애우가 이용하기가 불편해요."

장애우 기업을 흑자 기업으로 만든 신화의 주인공이라지만 그의 얼굴에선 경영인의 번뜩임보다는 농군의 평온이 느껴진다. 알고 보니, 그의 부친이 농군이었다. 일제시대 때 울산에서 농사 지어 살면서도 불의를 보면 참지 않았다는 그의 부친을, 그는 꼭 빼닮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단다.

울산공고를 나와 30여년 동안 한 직장에서 일한 평범한 이력으로 경영 혁신이라는 비범한 성과를 낸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농사 짓는 사람의 끈기와 상식을 지키는 사람의 용기 말이다.

기숙사·물리치료실… '꿈의 기업'

◇김동경 무궁화전자 대표 약력
1954년 울산 출생
1972년 울산공업고 졸업, 삼성전자 입사
1997년 삼성전자 사우회장
1999년 삼성전자 부장, 경기도 청소년 자원봉사센터 운영위원
2000년 경기도 공동모금회운영위원
2001년 장안대학교 일본학과 졸업
2002년 사회복지법인 무궁화동산(무궁화전자) 공장장, 수원지방검찰청 범죄예방위원 역임
2003년 무궁화전자 상임이사
2005년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고용개발운영위원, 경기지사 표준사업장 심사위원, 보고공학센터 자문위원
2006년 ‘자랑스런 경기인’ 기업경영 부문 대상


출처:머니투데이 2007.02.09.